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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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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렇게 살아 나에게 이 말은 포기,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래서 한때 이 말을 정말 싫어했다. 이 말을 들을 때면 다짜고짜 화가 났다. 그래서, 나도 포기하고 살란 거야? 할 수 있을 만큼은 해 봐야지. 남들이 다 그렇게 산다고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해? 그런데 최근에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의 전제가 사실 그게 아니지 않았을까? 포기하란 말이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누구나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이는 없다. 그러니 그 말을 한 이의 의도는, 내가 삶을 너보다 잘 알아,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라는 강요가 아니라 다들 그렇게 살고 싶어함에도 불구하고 삶에서 불가능한 부분이 있어. 그러니까 다들 무언가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거야, 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
감기와 성장 아이가 A형독감에 걸렸다. 첫날 아침에는 기침만 여러번 해서 단순 감기인 줄 알았더니, 밤에 열이 올랐다. 열은 내릴 듯 내리지 않았고, 회사에 연차를 쓰고 아이를 돌보다가 결국 병원에 갔다. 독감검사를 하니, 양성반응이 나왔다. 회사에 하루 더 연차를 쓰겠다고 하고 밤새 아이를 돌본다. 아이를 돌보는 과정에서 변화된 나를 본다. 분명 예전 같았으면, 아이의 병이 나의 책임인듯 전전긍긍하였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막았을 수 있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그쳤을 것이다. 그 불가능한 환상으로 스스로를 괴롭혔을 것이다. 못난 엄마라면서. 죄책감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못하고도 기진맥진하면서, 불안함에 시시각각 단위로 아이가 괜찮아지는지 확인하면서. 하지만, 이번 과정은 다르다. 나 포함, 그 누구를 탓하는, 그 시..
답을 구하지 않는다 삶의 중심에 있는 지성에 곧장 가 닿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질문을 한 다음 바로 그 질문을 내려놓는 것이다. 질문의 힘은 답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 그 자체에 있다. 사실, 아주 깊은 차원에서는 답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냥 질문하는 것이며 그런 다음 지금 이 순간에 주의를 기울여 그 질문이 일상 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마법을 펼치도록 하는 것이다. 어째서 이것이 효과적인가? 답을 찾겠다는 생각 없이 질문을 던지면, 마음을 거치지 않고 바로 삶의 지성이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내면의 공간을 창조하게 된다. 삶의 에너지는 늘 빈 곳을 메우려 하기 때문에, 삶은 정확한 때에 틀림없이 그 공간을 답으로 채워준다. 답은 당신에게 통제라는 환상을 주지만질문의 공간 속에 있..
오토바이 소리에 분노를 느끼지 않았다 요즈음 나의 변화들(241001) - 바로 오늘, 부타타타다다- 계속 귀를 자극하는 소리를 내는 오토바이의 굉음에 분노를 느끼지 않았다. 예전에는 폭발하는 분노를 느꼈는데, 너무 신기하다. - 남편이 사근해졌다. 세상에서 둘도 없는 웬수 같았던(사랑하는데 왜 얼굴만 보면 분노의 찬 말을 던졌을까), 남편이 나를 온전히 지지해주고 사근해진다. 출장으로 독박육아를 시키는 나에 대한 미안함일까. 뭘까. 따라서 나의 독기도 녹는다. 이상하다. "잘 다녀와." 남편이 나의 공부를 지지해주는 이 느낌이 너무나 어색하다. 출장지에서도, 먼거리에서도 서로에게 다정한 인사를 한다. 어색하다. 예전처럼 독기가 다시 차오르지 않는다. 뭐지? - 아이와의 연결감이 강해졌다. 예전에는 아이와의 연결감이 뚝뚝 끊기는 느낌으로 일..
옳음도 그름도 아닌 옳거나 그름의 판단은 나에게 너무 당연한 거였다. 당연히 무언가를 배운다면 그른 것을 배제해 가면서 알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즈음에 심리공부를 하면서 들었던 말 중에 당신은 모든 것의 옳고 그름을 가리려든다는 말을 들었다. 너무 이상한 말이었다. 공부를 하면서 옳고 그름은 가리는게 당연하잖아. 그게 지식이잖아. 그런데 그 말이 마음에 맴돈다. 이 문장을 궁금해 하는 내가 있다. 이 문장을 탐구해가는 끝에 어떤 답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아이는 부재중 아이는 고모와 함께 고모집으로 1박2일의 모험을 떠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를 고모의 차에 태워 보내고, 오지 않는 낮잠을 청한다. 신기한 일이다. 아이가 있는 주말은 늘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겹기만 했는데, 이렇듯 잠이 오질 않다니. 죄책감 때문인가. 그래도 왠지 억울해 낮잠을 청한다.  몇번 뒤척이며 자다 일어나니 낮 1시가 되었다. 왠지 고모가 마련해준 하루를 이렇게 보내기 아쉽다. 남편한테 말한다. "우리 예전에 데이트할 때 갔던 라멘집 가서 라멘이랑 맥주나 한 잔 마시고 올까?" 라멘집은 버스로 40분 거리다. 남편이 너무 늦었다고 한다. 어차피 동네 이마트에서 볼일도 있으니, 그냥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가자고 한다.  살짝 아쉬운 마음과 분노가 든다. 남편은 나만큼 오늘 하루를 특별하게..
실천하는 삶으로 나에게 '실천',이란 말은 초딩시절  이라는 책에나 나올 것 같은 용어였다. 너무나 훌륭하지만, 너무나 진부한 말이어서 오히려 반감마저 드는 단어. 위인들에게서나 들을 수 있는,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굳건하게 지켜나가는 신념의 말. 그래서 나에게는 너무 먼 단어.  그런데, 이 단어가 요즘의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처음에는 가족 심리 수업 중 선생님의 말 속에서였다. "당신이 그동안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역동이 지금도 그러하다는 것은, 당신이 지금까지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라는 맥락의 말씀을 하셨었고, 그게 마음을 무겁게 훑고 지나갔다. 맞다. 정말 맞는 말이었다.  친구 A의 말 속에도 있었다. 그녀는 아픈 중에도 불구하고, 계속 영성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나가는 의지를 보여..
그 코코넛에 계속 손 넣고 있을거야? “우리는, 당신이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몇 초 후, 그 문장이 이해가 되고 나니 울음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왜..”라는 끝맺지도 못한 질문에 선생님이 말했다. “당신은 이 트레이닝을 게임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한 발은 이 트레이닝에 담그고, 다른 발은 빼고 있다고요. 나는 당신이 이 트레이닝을 원하는지조차 잘 모르겠어요.” 순간, 나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사실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한때, 이 가족 심리 수업을 강렬하게 참여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배우고 싶었고. 배운 걸로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열망이 강렬했었다. 하지만,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남편의 반대가 컸고(매달 주말 중 이틀을 풀로 참여해야 했었다), 남편..
충돌 영화 [멜랑콜리아]를 보면서, 시시각각 지구로 충돌하기 위해 다가오는 별을 보다보니, 나도 주인공 클레어를 따라서 호흡이 가빠짐을 느낀다.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거림을 느낀다. 한쪽 이어폰으로 소리를 들었기에 망정이었지, 만약에 영화관에서 그 압도적인 장면을 거대한 스크린과 입체적인 음향으로 들었다면 객석에 머무를 수 있었을까, 싶었다. 아마 객석을 박차고 일어났거나, 아니면 귀를 틀어막았을 것이다. 아마, 난,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순수한 어린아이들은 온갖소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큰 소리 = 두려움,이라는 것은 어떤 경험을 통해 트라우마화 되었다는 것인데, 짐작되는 것은 아마 어린시절 부모님의 싸움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개인별로 트라우마화 된 소리는 다르겠지만, 무튼. 그리고 소리와 관련한..
무국적자가 사는 법 평생을 무국적자로, 무소속으로 살아왔다. 물론, 한국인에게서 태어났으니 한국인이고, 부모가 낳았으니 나의 부모의 자녀로 기록되었겠지만, 늘 소속이 없는 것처럼 살았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 소속이 굳건했던 아이들이 가장 햇살처럼 빛났던 것 같다. 그 소속이란, 나와 부모의 정서적 연결감이었다.   떠올려보면, 우리 엄마는 우리 세자매를 수치스러워 했던 것 같다. 남자아이를 낳으려다 낳지 못한 결과물. 그래서 나도 어딜 갈때마다 졸졸 쫓아오는 동생들을 싫어했다. 셋이 좌르륵 서 있으면, 동네 어른들이 신기하게 쳐다보았고 그럴 때마다 동물원 원숭이 같다고 생각하며 수치스러워했다(물론, 철이 들고 나서는 동생들을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거기다가, 우리 부모는 모두 양친과 이른 이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