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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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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되기 나는 생물학적으로 엄마이긴 하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모성이 있을까, 하면, 온전히 “네!”라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처음, 아이를 보자마자 모성이 푹 올라온 건 아니라서, 내가 이상한가, 싶었고, 그러다가 인터넷의 몇몇개의 글을 보면서 아, 원래 모성이 처음부터 있는건 아니구나, 내가 틀린 건 아니었어!라는 묘한 합리화를 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생각이 든다. 나의 다음 스테이지, 다음 퀘스트는 가 아닐까. 역시 이상했다. 하물며 동물들도, 제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고, 당연히 인간도 동물이니 종족 번식을 위해 자식을 잘 키워야 하고 사랑하는 것이 기본 값일진데, 나는 늘 나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마음과 자유로워지고 싶은 한 인간의 내면이.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
골절과 균열 "어머니, 아이 팔에 골절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떡하죠?" "네?" 듣는 순간, 놀라기보다는 피가 싸악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일 낮, 아이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물론,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낮의 보호자에게서 전화 올 일은, 내가 알기로는 한가지 밖에 없었으니까.   "아이들 데리고 어린이집 근처 놀이터에 다녀왔거든요. 아이가 미끄럼틀에서 장난치면서 뛰어내렸는데 잘못 착지를 하면서 팔꿈치를 땅에 부딪혔어요. 크게 아픈 줄 이야기를 안 해서 모르고 있다가, 어린이집에 와서 밥 먹고 양치하고 하는데도 계속 기분이 안좋은 것 같아서 제가 이래저래 몸을 살피다 알게 되었어요."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그 어떤 감정도 조잘조잘 ..
죄책감이 아닌, 사랑을 선택하겠습니다 “엄마, 나 체육관 그만 다닐래.” 아이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체육관을 안 다닌다고 해도 다른 곳을 알아봐야 했다. 우리는 대안이 없는 맞벌이었다. 죄책감으로 숨이 턱 막혔다. 다른 데에 가면 적응을 할까, 거기에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서 간 거면서, 그 친구도 놓고 그만다닐 거라는 건, 무슨 아이에게 괴로운 일이 있었던 건가. “왜, 우리 아기, 체육관이 재미 없어?” 아기가 이번에도 꾹, 참는 듯 하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체육관 가면 잠만 자, 두번 잘 때도 있어.” 무슨 말인가. “수업할 때도 자?” “응.” 귀를 의심했다. 만 다섯살, 여섯살 아이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큰 저항이 온 건 확실했다. 유치부 아이에게는 줄넘기만 계속 하는 프로그램이 지..
삶의 첨단 새로운 부서에서는, 부서장이 수시로 찾는 위치에서 일한다. 거의 부서장의 비서인데, 그 일을 하면서 내부 부서원들의 사무실에서의 요구들을 들어주고, 외부에서 요구하는 자료를 모아서 제출해준다. 언제 눌러질지 모르는 자극버튼에 대기조가 된 것 같다. 이전 부서에서는 오롯이 외부 고객들에 대한 대기조였는데, 그래도 그때는 호출 버튼은 있었지만, 지금은 호출 버튼도 없이 막무가내로 노출이 되고 있다. 첨예한 긴장감의 끝에서 나의 삶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이곳은 그간에 연습했던 자기연민의 자원을 수시로 활용하는 장임을 안다. 그간 자기연민을 연습한 나의 마음은 확실히 커졌고 단단해졌다. 그런 나에게 펼쳐진 새로운 스테이지임을 안다. 나는 수시로 실수하고 있고, 수시로 긴장하고 있다. 늘 무언가를 할 때, 자격..
어른, 책임을 지는 새로운 부서에 적응해 나가는 것도 2주가 지났다. 최악의 1주일이 지나간 뒤로, 나는 안정되고 있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도 많이 내려놓고 사랑으로 돌보고 있고, 아이를 급작스럽지만 선뜻 맡아주신 시부모님에게도 부담감 대신 감사함을 더 느끼게 되었고, 남편도 출장에서 돌아왔다. 그 사이 칼퇴도 한번 했다. 새 부서에서 총무 업무를 맡게 된 이 새로운 도전이 내가 견딜 수 있을 만한 도전을 하늘이 준 것이라면 내가 정말 그럴 때가 되었나,라는 여유로운 생각도 잠깐 해 본다. 남한테 싫은 소리 한번을 못해서 뒤로 미루며 끙끙 앓기만 하던 내가, 이상적인 사람과 비교하며 늘 모자르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며 정의되지도 않는 좋은 사람이 되려 애썼던 내가 지금은, 누군가한테 빚을 독촉하듯 업무를 독촉해야 하고, 그래서..
이만하면, 괜찮은 새로운 부서에 발령이 났다. 일의 양이 어마무시했다. 일을 처리하면 새로운 일이 쓰나미처럼 밀려왔고, 또 처리하면 밀려왔다. 뭐 이런 자리가 있나 싶다. 그리고 더 큰 걱정은 아이였다. 월, 화, 이틀 퇴근을 9시에 했다. 어제는 아이가 나를 기다렸지만, 오늘은 저녁도 안 먹고 힘없이 잠들었다 했다.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가뜩이나 아빠도 출장가서 없는데, 할머니와 할아버지만으로는 역부족이었나, 싶었다.  원래 원하던 업무는 이것이 아니었다. 아이를 돌보면서 할 수 있을, 조금 더 가볍고 수월한 업무를 지원했는데, 발령이 꼬여서 아주 일처리 양이 많은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인사가 내멋대로 되던가. 그렇지만 자존심상 일에서도 밀리기 싫었다. 원치 않았던 일이라서 더 오기가 났다. 그리고 마음 한켠으로..
외로움, 안녕 남편이 지방 출장으로 인해 출장지로 떠나고, 나는 아이를 재우고 일요일 밤에 머문다. 출장지에 도착한 남편이 전화를 건다. 잠깐 숙소 앞 마트를 가는 중이라고. 남편과는 몇 마디 길게 하지는 않는다. 푹 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니 무거움이 마음을 짓누른다. 왜 남편은 내리자마자 통화를 하지 않고 이제야 통화를 하는 걸까, 과연 자기 전에는 전화를 걸까, 왜 남편은 집에 와서 나랑 둘이서 대화하면서는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을까. 서운해. 서운해. 서운해.  그러다가 깜짝, 생각이 드는 것이다. 금요일 밤에 올라온 남편은 토요일은 나의 교육을 위해서 종일 아이를 돌봐주었고, 친구 커플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일요일에는 종일 집안일(이불 빨래) 등등 과 아이를 돌보다가 갔다. 나의 투정이 정..
이동을 앞두고 한 부서에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의무적으로 전보를 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나에게도 전보 시기가 왔다. 벌써 몇 번이나 경험한 전보이지만, 나는 이 시기가 되면 늘 고통받았었다. 그 어떤 인연도 중요하지 않다고, 붙잡지 않고 오로지 일만 했던 나는, 전보 철이면 떨이상품처럼 남는 곳에 꽂혔다(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근무부서 안에서도 떨이상품 취급이었다. 구르는 돌이 오면 빠져나가는 박힌 돌 같은 존재. 그런 상황들 속에서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스스로를 떨이상품으로 생각을 했기에 한마디도 못했던 것 같다. 이번에도, 역시 떨이상품처럼 떨어져 나갈 전보를 상상하며 아찔해졌다. 부서장이랑 앞으로 근무할 곳을 찾는 대화를 하는 동안, 이런 말을 들었다. “너의 일은 평가가 어려워..
불안해도 괜찮아 치열한 한주가 끝나고, 다시 평온한 한주가 돌아왔다. 그런데 그 평온한 한 주를 보내는 내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치열한 한 주 속에서는, 평온한 한주를 사막의 오아시스 같이 갈구했는데, 지금 막상 그 오아시스에서 물을 와구와구 들이키니, 반나절도 안 되어 치열한 사막으로 돌아가고 싶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 아이러니함이 너무나 우습다. 나는 정말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불안할까. 원인을 캐다가 아차, 싶어 내려놓고 불안함에 머물러본다. 불안해도 괜찮아. 불안해도 괜찮아. 내가 나의 불안을 받아들이기를. 그러고 보니, 배에 하루 종일 힘을 주고 있는걸 알아챈다. 세상에, 내가 이러고 있었다고? 복부에 힘을 푼다. 불안해도 괜찮아. 불안해도 괜찮아. 불안해도 괜찮아. ..
식물일기 5월 4일, 택배가 도착했다. 그 안에는 화분 두개와 흙덩이,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몇 개의 물건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두 개의 황금색 씨앗을 발견했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이 씨앗에서 꽃이 피는거야?!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초등학교 때 고작 강낭콩을 발아시켜 보았던(실제로 발아한걸 보았던가?) 경험이 나의 식물 키운 경험의 전부였다. 연민메이트 멤버 중 한 명인 미희님께서 5월의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리딩해주셨다. 말 그대로 씨앗을 받아서 발아부터 시작해서 키워보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나는 지금까지 주로 식물을 고사시키는 쪽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번에 미희님께서 선물해주신 고사리를 몇 개월간 키워본 경험이 있었기에[!] 그때만큼 주눅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