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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일상

죄책감이 아닌, 사랑을 선택하겠습니다

 “엄마, 나 체육관 그만 다닐래.” 아이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체육관을 안 다닌다고 해도 다른 곳을 알아봐야 했다. 우리는 대안이 없는 맞벌이었다. 죄책감으로 숨이 턱 막혔다. 다른 데에 가면 적응을 할까, 거기에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서 간 거면서, 그 친구도 놓고 그만다닐 거라는 건, 무슨 아이에게 괴로운 일이 있었던 건가.
 
  “왜, 우리 아기, 체육관이 재미 없어?” 아기가 이번에도 꾹, 참는 듯 하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체육관 가면 잠만 자, 두번 잘 때도 있어.” 무슨 말인가. “수업할 때도 자?” “응.”  귀를 의심했다. 만 다섯살, 여섯살 아이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큰 저항이 온 건 확실했다.
 
 유치부 아이에게는 줄넘기만 계속 하는 프로그램이 지루한 것 같기는 했다. 게다가, 최근에 체육관이 인기가 많아져서 차로 하원하는 시간이 더 늦어졌다. 할머니 말로는, 아이가 차에서 꾸벅꾸벅 조는 것 같다고 했다. 
 
 “차가 한번 갔다가 올때까지 기다려야 돼.”라고 아이는 말했다. “차가 한번 갔다 와?” “응.” 아, 두 번 차를 돌렸구나. 아이가 많아져서 하원이 늦어진다고는 했지만, 차량을 두번 돌릴 줄은 몰랐다. 한번에 하원시킬 수 있을 정도의 아이만 받아야 하는거 아닌가. 아직 엄마 손이 필요한, 유치부인 아이들을, 한 구석에 모아 놓고 다음 차를 기다리라니. 물론 수익성을 추구해야 하는 곳이지만, 너무 아쉬웠다. 
 
 “그럼 체육관 말고 태권도 학원 다닐까?” “아니.” “그럼 차라리 체육관 가지 말고 어린이집에서 더 놀다가 집에 올까?” “아니.” “그럼?” “할머니가 일찍 어린이집에 데리러 와 줬음 좋겠어.” 아, 하지만 할머니와 일찍 온 아이가 할 일은 뻔했다. 하릴없이 TV보기. 게다가 할머니도 몸이 좋지 않으셨다. 
 
 하지만 딴지를 걸기 전에 조용히 있었다. 이왕 아이가 맘을 튼 김에 조금 더 들어보자 했다. “그리고, 또 우리 아기 힘든거 있었어?” 그러자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가 말한다. “다른 친구들은 다 체육관 끝나고 엄마가 데리러 와.” 아, 이 말을 듣는 순간 또 죄책감의 파도가 몰아쳤다. 아아-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겨우 말을 뗐다. “아가야, 엄마는... 그 시간에 못 가(이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질 않으려 했다. 겨우 내뱉었다.). 그럼 우리 아기, 할머니가 체육관에 데리러 오면, 그럼 체육관에 다니는 건 괜찮아?”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게 컸구나.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을 속속 데리러 오는데, 엄마가 데리러 오지 않는 아이들이 두번째 버스를 기다리며 엄마의 부재를 확인해야 했을 그 시간이 아이를 힘들게 했구나. 그래도 더 떼쓰지 않고, 할머니와 온다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너무 미안했다.
 
 옆에서 코를 골며 일찍 잠들었던 남편이, 아이의 이야기를 잠결에 들었나보다. 아이와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벌떡 일어나서 아이를 폭 안는다. “우리 아기, 많이 컸네.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눈물이 찡 났다.


 
 나에게 어마무시한 엄마로써의 죄책감이 있음을 안다. 그것은 분명, 나의 엄마에 대해 해소하지 못한 오래된 분노일 것이다. 이 분노는 아이가 괴로워할 때, 그 무게 그대로의 죄책감으로 바뀌어 나를 집어삼킨다. 이럴 때에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이 죄책감을 서서히 만나고 있다. 죄책감을 인식하고, 그것이 순수하게 나의 아이에 대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오늘은 그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아가야, 엄마는 그 시간에 못 가). 그러고 나니 보이는 것이다. 죄책감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선택임을.
 
 나는 나의 마음속의 공간에 죄책감을 들일 수도 있고, 사랑을 들일 수도 있다. 오롯이 괴로워하는 아이의 운명 앞에서 괴로워하는 아이를 뒤로 남겨둔 채, 죄책감으로 나를 가두고 스스로에게 비난의 말을 퍼부을 수도 있다. 혹는, 아이 앞에서 더 큰 사랑으로 아이를 감쌀 수도 있다. 아이와 하나될 수 있다.
 
 죄책감은 선택이다. 사랑도 선택이다. 그렇다면, 상황에서 나는 사랑을 택할 것이다. 앞으로 더더욱 그리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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