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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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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찾아서 내 안에는 엄마가 없었다. 물론 물리적인 엄마는 살아계셨지만, 내 마음속에 엄마의 원형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없었다. 그곳이 비었음을 모르는 채로 인생을 살다가 30대 초반, 엄마의 원형처럼 느껴지는 존재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그 분에게 온 마음을 바쳤다. 하지만 그 분은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렇게 내적 압력이 극에 달한 어느 날, 그 분에게 서운함과 분노를 폭발하듯 표현했다. 그러고 난 후, 나는 정신을 차리며 거대하고 아득한 수치심을 느꼈다. 세상에, 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런 커다란 분노를 드러냈을까. 난 이제 버림받을 거야. 이제 나는 사랑받지 못할 거야. 이제 난 끝이야. 그 생각과 함께 나는 도망쳤다. 그 분에게 엄마를 기대하고, 또 엄마가 나를 버리기 전에..
충치와 최선 아이가 밤새 잠을 못 잤다.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났다. 애써 잠을 재웠지만, 아침에 일어났더니 한쪽 얼굴이 퉁퉁 부었다. 입 안을 열어보니, 잇몸 안쪽에서 피가 비치고 있었다. 회사에 말하고 바로 치과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가 말했다. “충치가 많이 진행됐네요. 안에 염증도 있고, 신경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를 빼야 할 수도 있고요. 영구치에 영향이 갈 수도 있어요.” 고작 5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였다. 우선 너무 놀랐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아이가 불안해 할까봐 짐짓 침착한 척하며 의사와 대화를 나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아이는 아프니 아이대로 발걸음이 무겁고, 나는 나대로 죄책감으로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렇게 될 때까지 아이의 치아를 방치했다니, 나..
이마저도, 엄마다 나는 아들에게 불안이라는 트라우마를 물려주는 엄마, 못난 엄마라고만 생각했다. 아이가 불안해해도, 불안한 마음을 안정적으로 어루만져주지 못하는 능력 없는 엄마. 그저 트라우마를 대물림 하는 존재일 뿐인. 한동안은 어떡하지, 라는 생각만 들었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불안이다). 내가 해소하지 못하여 불안이 아이에게 가는구나. 아, 정말 나는 못난 엄마다. 아이에게 그런 유산을 물려주다니. 그러다가 어제,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불안에 감사할 수 있다면? 그러고 나서, 인스타그램에 끄적이다 불안을 제대로 마주본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불안은 없애야만 하는 것, 눌러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죠. 하지만 문득, 다른 생각이 듭니다. 불안에게 감사해한다면, 그럴 수 있다면? 불안 덕분에 나에게까지 생명이..
말하는 재주 나는 무대에 서는 것을 두려워한다. 물리적 공간도 그렇지만 심리적 공간도 그렇다. 나 혼자 단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그렇다. 그런 상황이 오면 공황상태가 되어 머리가 하얗다. 그러면 나는 텅 빈 공동이 되어 허벌허벌 이야기를 물색없이 떠벌리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왜 그렇게 이야기했을까, 더 잘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하고 후회한다. 나의 속은 깜깜하다. 준비가 되지 않으면 말하지 못한다. 아주 헛소리만 한다. 최근에 한 친구가 이야기했다. “나는 너한테 모든 걸 이야기해줬는데, 왜 너는 나한테 말을 하지 않아?”라고 물어봤을 때, 나는 아무렇지 않게, “나는 원래 내 이야기를 잘 안해.”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때 친구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너는 나를 믿지 않는구나.”라고 이야기를 ..
빛나는 유산 고통스러운 과거를 지났다. 누군들 고통스럽지 않았겠냐만은 고통스러운 과거를 지났고, 나는 지금 살아있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새로운 문제를 만났다. 나의 트라우마를 아이에게 대물림했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시작은, 어린이집 선생님과 정기 상담을 하면서 나눈 대화였다. “어머님, 아가가 해명을 잘 안 해요. 다른 친구랑 우연히 부딪혔을 때, 아이들이 서로 오해할 수 있잖아요. 상대는 자신을 때렸다,라고 주장할 때, 우리 아가는 선생님이 물어봐도 해명을 안 해요. 오히려 입을 꾹 다물어요.” 그 말을 듣고 머리가 띵-했다. 패턴이 나와 같았다. 나도 남편과 싸울 때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면, 입을 꾹 닫아버렸었다. 아이가 그 패턴을 똑같이 하고 있다니- 아이도 나와 똑같은 ..
모든 패를 내어 놓았다 검은 강물이 흘렀었다. 나와 온전한 사랑 사이에. 그 검은 강물은 감히 건널 수 없을 듯 보였다. 처음에는 내가 사랑을 간절히 원하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사랑을 원하는 줄 ‘알았을’ 때에는, 그 사이에 검은 강물이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 강물은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강물 앞에서 울기도 하고,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화를 내보기도 하고, 무력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어떤 반응에도 상관없이 검은 강물은 고고히 흐르고 있었다. 나와 검은 강물과 사랑은 그렇게 대치 상태로 꽤 있었다. 그러다 어제, 마이클 싱어의 에서 한 문구를 보았다. 영속적인 평화와 기쁨과 행복을 원한다면 내면의 혼란을 뚫고 건너편으로 가야만 한다.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나 사랑이 물결처럼 차오르는..
세상과 알과 나 나는 살아보지 않은 삶에 저항했고,살아본 삶에 저항했다.내가 바라는 삶은,내가 살아본 삶에서 딱 한 걸음.적당히 위협적이고 적당히 안전한 도전.그게 나의 지금까지의 패턴이었다.하지만, 지금까지와 다르게,이제는 주어지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힘을 빼려 노력하고 있다.하지만, 이 삶에도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든다.왜냐하면 살아보지 않았던 삶에 대해무의식적 위협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으며,그것에 대한 저항에 쓰는 에너지, 괜찮을거야, 또한 작동하기 때문이다.그래서, 주어지는 대로 살아가는 삶이너무나 버겁고 위협적으로 느껴지던 어제,지금 나의 삶에 주어진 것들을, 나열해 보았다.그리고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스케줄이 꽤 여유로웠기 때문이다.아, 버거운 것은 오로지 내 마음 뿐이었구나,하고 새삼 알아차린다.또한, 그..
감기와 사랑 지난주 금요일부터 아이가 밤에 기침을 했다. 느낌이 좋지 않아 다음 날 병원에 갔다. 감기약을 처방받아 먹이는데 열까지 오른다. 해열제를 먹이니 잠잠해졌지만, 한숨 돌리자 놀리듯 다시 열이 올랐다. 열과의 밤샘 사투가 시작되었다. 비몽사몽의 상태로 재우다가 다시 아이가 깨면 해열제를 먹이고 재우고 다시 자고, 낮에도 비슷한 상태로 아이를 돌보았다. 남편이 출장을 갔던 터라, 이어진 평일에도 회사에 연가를 내고 계속 아이를 돌보았다. 그런 와중에 내 몸도 심상치가 않았다. 토요일부터 심한 두통이 왔다. 두통은 이틀을 가더니, 그러고 나서 일요일 밤, 결국 감기가 왔다. 열이 계속 오르고 온몸에 몸살이 왔다. 너무너무 아팠다. 온몸이 두드려 맞듯이 아팠다. 월요일, 아이와 같이 병원에 가서 같이 진료를 받고..
벚꽃의 일 벚꽃의 계절이 지났다. 지난 2주 동안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회사 주변 개천을 걸으면서, 벚꽃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있었다. 지금 보지 않으면, 다시 보지 못할, 1년 후에나 다시 볼 수 있는 계절을 지난다고 생각이 드니까 더욱 아쉽고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다. 그러다가, 문득 알아차려지는 것이다. 벚꽃이 지고 나서도 그 곳에 그대로 있을 벚꽃나무를. 갑자기 뜨끔한다. 아, 나는 이 나무를 2주만 존재하고 나머지 계절에는 없을 나무처럼 생각했구나. 다시 벚꽃을 본다. 팝콘처럼 하얀 잎을 너울거리며 흔들고 있는 나뭇가지들, 흐드러지게 핀 벚꽃들. 그저 벚꽃은 벚꽃의 오늘의 일을 한 것일 뿐일텐데. 오늘 와서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카메라를 연신 들이대든, 내일 그 자리에 없는 나무처럼 스윽 지나가든, 벚꽃나무..
불안을 뒤로, 사랑을 앞으로 나는 애를 쓴다. 나는 조심스럽다. 나는 연결되고 싶다. 나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 그래서 거리를 둔다. 누구에게든. 내가 맞을까, 틀릴까에 대한 준거기준이 늘 밖이었고, 밖에서 인정받고 싶었고, 밖에서 응답이 없으면 나는 불안해했다. 하지만, 불안은 내 안에서 올라오는 거였고, 타인의 인정의 응답을 받아도 의심하였으니, 결국 답은 자기신뢰였다. 무엇이 자기신뢰일까. 나의 근원을 믿는 것. 나 자신을 믿는 것. 다 알겠는데, 나를 어떻게 온전히 믿냐고. 한 번도 그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적고 나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정말, 정말로 그것을 경험한 적이 없을까? 아니다, 그냥 경험한 적이 없다고 거겠지. 어린 시절, 나의 겉과 내면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하던 시절, 분명, 내게 그랬던 적이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