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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일상

아이는 부재중

 

 아이는 고모와 함께 고모집으로 1박2일의 모험을 떠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를 고모의 차에 태워 보내고, 오지 않는 낮잠을 청한다. 신기한 일이다. 아이가 있는 주말은 늘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겹기만 했는데, 이렇듯 잠이 오질 않다니. 죄책감 때문인가. 그래도 왠지 억울해 낮잠을 청한다.

 

 몇번 뒤척이며 자다 일어나니 낮 1시가 되었다. 왠지 고모가 마련해준 하루를 이렇게 보내기 아쉽다. 남편한테 말한다. "우리 예전에 데이트할 때 갔던 라멘집 가서 라멘이랑 맥주나 한 잔 마시고 올까?" 라멘집은 버스로 40분 거리다. 남편이 너무 늦었다고 한다. 어차피 동네 이마트에서 볼일도 있으니, 그냥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가자고 한다.

 

 살짝 아쉬운 마음과 분노가 든다. 남편은 나만큼 오늘 하루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럼 각자 보내고 오자!"라고 엄포를 놓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어영부영 남편이 끓여준 라면을 나눠먹고 설거지를 한다. 아이에게 전화를 한다. 키즈카페란다. 업된 말투가 마음을 놓이게 한다. 그러고보니 궁금하다. 남편에게 물었다. "마트는 왜 가려고?" 시댁에 전자렌지가 고장나서 교체해야 한단다.

 

 맞네. 며칠전에 버려졌던, 16년의 생애를 마친 전자렌지가 떠올랐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전자렌지 가게에 가서 전자렌지를 사고, 시어머니가 곧 있을 조카의 결혼식에서 입을 옷도 산다. "아이고, 고맙다. 매일 추석만 같았으면 좋겠다." 어머니가 농담처럼 웃으며 이야기를 하신다. 아이를 맡기는 입장에서는 이마저도 부족한 듯 싶다. 늘 감사한 마음이다.  

 

 집에 돌아와 여기저기 돌아다녀 피곤한 몸을 누인다. 남편이랑 둘만 있으니 어색하다. 쌀랑한 이 느낌. 살짝 또 잠들고 나니 저녁이다. 남편이 말한다. "나가서 하천변에서 맥주라도 한잔 하고 오자." 둘이서 드디어 특별한 시간을 보내나,했더니 동네의 절친을 전화로 부른다. 화가 팍 난다. 둘이 노는게 그렇게 어렵니? 감사하게도(감사할 일은 아니지만) 오늘은 친구가 컨디션이 안 좋다고 뺀찌를 놨다. 야호. 

 

 그렇게 둘이서 꼬치집에 앉아서 술을 먹는다. 꼬치와 안주가 꽤 훌륭해 마음이 풀린다. 나의 심리상담 수업은 늘 남편에게 불만이고, 남편의 주식은 늘 나에게 불만이다. 둘이서 투닥투닥 하다가, 우리가 거울같은 짓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 모두는 사실 하나를 위함에 있다. 가족. 그러기에 멈출 수도 없다. 올해 12월에 둘 다 정리를 하자,라는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하고 꼬치집을 나온다.

 

 다시 한번 고모에게 전화를 건다. 아이는 곧 잠이 들려고 몽롱한 말투다. 내일 보자,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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