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코치일상

무국적자가 사는 법


 평생을 무국적자로, 무소속으로 살아왔다. 물론, 한국인에게서 태어났으니 한국인이고, 부모가 낳았으니 나의 부모의 자녀로 기록되었겠지만, 늘 소속이 없는 것처럼 살았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 소속이 굳건했던 아이들이 가장 햇살처럼 빛났던 것 같다. 그 소속이란, 나와 부모의 정서적 연결감이었다. 
 
 떠올려보면, 우리 엄마는 우리 세자매를 수치스러워 했던 것 같다. 남자아이를 낳으려다 낳지 못한 결과물. 그래서 나도 어딜 갈때마다 졸졸 쫓아오는 동생들을 싫어했다. 셋이 좌르륵 서 있으면, 동네 어른들이 신기하게 쳐다보았고 그럴 때마다 동물원 원숭이 같다고 생각하며 수치스러워했다(물론, 철이 들고 나서는 동생들을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거기다가, 우리 부모는 모두 양친과 이른 이별을 경험했다. 아마, 그래서 우리 부모들도 무국적자로, 무소속으로 평생을 살아오셨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감사하게도 두분은 세상을 살아냈고, 그리고 두 분이 만나서 나와 동생들을 낳았다.

하지만 부모가 무국적자니 자녀 또한 국적이 생길 리 만무했다. 경험해보지 못한 소속의 느낌을, 어찌 구현해 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두 분은 어떻게든 키워냈다.
 
 키워내는 것만으로 감사할 일인데, 키워내니 또 다른 서운함이 뱉어내는 것이다. 무소속이어도 먹고 살기만 중했던 사람들이 키워낸 자녀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왜 나는 국적이 없어?”
 
 국적이 없는 느낌, 딱 그 느낌이었다. 무언가 원초적으로 틀린 느낌. 이미 태어날 때부터 잘못된 느낌. 껍질을 뚫고 나가려고 하면 몰려드는 스스로에 대한 가혹한 손가락질에 껍질 안에서 살아야 했다.

대중 속에서 살다가, 안에 있는 한마디를 꺼내면 제일 처음 내리치는 망치는 늘 나의 몫이었다. 내면에서 목소리가 늘 소리쳤지만, 그 목소리를 밖으로 꺼낼 확신이 부족했었다. 비난하는 나 자신을 뒷받침해줄 그 어떤 손길도 내 안에서는 없었다.
 
 그래서 국적을 얻기 위해 아등바등 살았다. 부모님을 원망하면서. 국적이 있는 이들이 부러웠고, 나도 노력하면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배움의 결과는 이랬다. 그것은 없다, 없음을 알고 받아들여라. 
 
 엄마와의 자궁에 있었던 원초적 연결감을,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재현해 낼 수 있을까. 그것은 환상이다. 그런 일체감은 영원히 얻을 수 없다, 심지어 부모와의 관계에서도. 그것을 밖에서 찾을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내려놓는 것이, 진정한 독립이고,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걸 한동안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었고, 그러면서 내면에서 많이 싸웠고, 많이 울었다. 그러면서 신기하게도 원초적으로 내가 틀렸다는 그 느낌이 많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그러면, 나는 영원히 무국적자로 사는 것일까,라는 씁쓸한 물음에 대하여, 거기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최근 배움의 답은 이러하였다. 
 
 내가 알고 있고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으로 나자신을 품어내라. 그리고 그 사랑을 그 어떤 저항 없이 숨처럼 들이마신다. 그 사랑이 내 안에 각인되면, 나는 비로소 국적자가 될 것이다. 경험했던 어둠의 크기만큼의 사랑에 소속될 것이다. 그리하면 그 곳이 나의 국적이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나의 아이 또한 국적자로서 살게 되리라.

'코치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코코넛에 계속 손 넣고 있을거야?  (3) 2024.08.31
충돌  (0) 2024.08.24
엄마 되기  (0) 2024.08.04
골절과 균열  (5) 2024.08.03
죄책감이 아닌, 사랑을 선택하겠습니다  (0) 2024.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