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코치일상

불안을 뒤로, 사랑을 앞으로


나는 애를 쓴다.
나는 조심스럽다.
나는 연결되고 싶다.
나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 
그래서 거리를 둔다.
누구에게든.



내가 맞을까, 틀릴까에 대한 준거기준이
늘 밖이었고, 밖에서 인정받고 싶었고,
밖에서 응답이 없으면 나는 불안해했다.
 
하지만, 불안은 내 안에서 올라오는 거였고,
타인의 인정의 응답을 받아도 의심하였으니,
결국 답은 자기신뢰였다. 무엇이 자기신뢰일까.

나의 근원을 믿는 것. 나 자신을 믿는 것.
다 알겠는데, 나를 어떻게 온전히 믿냐고.
한 번도 그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적고 나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정말, 정말로 그것을 경험한 적이 없을까? 
아니다, 그냥 경험한 적이 없다고 <믿는> 거겠지.

어린 시절, 나의 겉과 내면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하던 시절, 
분명, 내게 그랬던 적이 있었더랬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았던 시절. 
그 시절이 분명 존재했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비틀거린다. 그것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로 갔을까. 아니, 어딘가에 덮여있을까.

덮여있다면, 덮고 있는 강력한 힘은 무엇일까. 
나를 꽉 내리누르는, 숨 막히게 하는 그것. 
그것은 어디에서 만들어져서 나에게 왔을까. 
어느 사이에 그 자연스럽지 않은 힘이 강해져서
자연스러운 나의 삶을 내리누르게 되었을까. 


 

나의 거부 받았던 경험. 
나의 사랑받고 싶은 마음. 
나를 부정하면서라도 얻고 싶었던 사랑.
그리고, 그래야만 얻을 줄 알았던 사랑.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드러내면서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지만.



죄책감 때문일까.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유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았던 적이 있어서.
남편을 바꾸려고 해서.
부모님을 미워하여서.
동생들을 괴롭게 해서.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

혹은 수치심 때문일까.
넌 참 독특하구나, 참 우리와 다르구나.
넌 달라.

그래서 사랑받을 수 없어.
 


 


그럼 너는 이렇게 스스로 낙인찍힌 채로, 
평생 이렇게 살다가 죽을거야?

두려움이 인다.

 

 

그건 원치 않아.

 


 


문득, 어느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다르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이 고통이 나를 어디로 이끕니까?
나는 무엇을 떠나야 하며,
무엇이 이제 내 앞에 서 있습니까?
언제나 다르고 더 큰 사랑이 서 있습니다.

버트 헬링거, <이뤄지는 생각들>

 



아,

 

왜, 가 아니라 어디로,를 봐야 하는구나.

이 고통이 왜 생겼는가,가 아니고.

이 고통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가.
사랑으로. 더욱 깊은 사랑으로 향한다.


나는 죄책감을 품고 뒤로 보내야 한다.
나는 수치심을 품고 뒤로 보내야 한다.
지금 내 앞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만이.



산책을 하다가 만난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서
나는 나를 조금 용서하였다.

 

*

 

pexels-a-m-1256888

'코치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기와 사랑  (2) 2024.04.18
벚꽃의 일  (0) 2024.04.12
긴 겨울  (26) 2024.03.29
여러분의 2021 새해 계획은 무엇인가요?  (0) 2021.01.01
당신만의 신비로운 장소는 어디인가요  (0) 2020.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