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코치일상

세상과 알과 나

 

나는 살아보지 않은 삶에 저항했고,
살아본 삶에 저항했다.

내가 바라는 삶은,
내가 살아본 삶에서 딱 한 걸음.
적당히 위협적이고 적당히 안전한 도전.
그게 나의 지금까지의 패턴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다르게,
이제는 주어지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
힘을 빼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삶에도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든다.
왜냐하면 살아보지 않았던 삶에 대해
무의식적 위협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저항에 쓰는 에너지, 
괜찮을거야, 또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어지는 대로 살아가는 삶이
너무나 버겁고 위협적으로 느껴지던 어제,
지금 나의 삶에 주어진 것들을, 나열해 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스케줄이 꽤 여유로웠기 때문이다.
아, 버거운 것은 오로지 내 마음 뿐이었구나,
하고 새삼 알아차린다.
또한, 그 버거움이 체력적 버거움이 아니라는 것.

그 버거움은 나에게 안전했던 

알 속 세상이 부서지는 고통이었다.
더하여 나 또한 부서질 것 같은 두려움.

하지만 난 안다. 

그것은 실재가 아니야.
나는 부서지지 않아.
그리고 나는 이제, 
적어도, 

두려움에 머물 수 있는 힘이 있다.

어쩌면 이것은,
나의 트라우마가 부서지는 일일 수도 있다. 
트라우마로 둘러싸인 세상에 금이 가고 있다.

 



지금까지 나는 그저 
알에 속하려 노력하였지만
알에 속하지 못하였다.


알과 연결된 탯줄에서 
조기박리된 아기 같았다.
그것이 나에게 늘 박탈감을 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아는 것이다.
알 속 세상이 다가 아니고,
사실 그 알 밖에 있는 거대한 세상에서는 
신이 그 알을 어루만지며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이미 그러고 있었다고.

세상은, 알을 깨고 나간 
저편에서 나를 기다리는게 아니고,
이미 나는 그 세상 안에 속하여,
그저 작은 알에 갇혀있을 뿐이라고.

 



아름다운 바깥 세상 속 노래가 들린다.
그저 알과 거무튀튀한 점액질과
나만 있던 세상이 부서지려 하고 있다.

그게 가능한 건, 
세상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내 귀에 들리기 때문이고,
더불어 내가 부서질 것 같은 이 두려움에
머무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서인 것이다.

 

'코치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든 패를 내어 놓았다  (0) 2024.05.02
감기와 사랑  (2) 2024.04.18
벚꽃의 일  (0) 2024.04.12
불안을 뒤로, 사랑을 앞으로  (0) 2024.04.04
긴 겨울  (26) 2024.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