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기술들이 효율화되니, 인간관계도 효율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었나 봅니다.
나와 맞는 친구들만 곁에 두고, 맞지 않는 가족 구성원에게는 곁에 다가가려는 시도조차 않는.
TV에서 한 전문가는 그렇더군요, 나중에 우리의 자식들은 하루종일 온라인으로 친구와
이야기하겠지만, 부모인 우리는 그 친구를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친구는 AI이기 때문이다,라고.
영화 허(HER)에서 나왔던 주인공의 삶처럼, 우리의 관계의 최종 목적지도
나의 마음이 가장 안전한, 영원히 상처받지 않을 AI 혹은 다른 효율적인, 어떤 곳일까요.
하지만, 잘 알고 있습니다. 그토록 제가 '맞는' 사람들만 주변에 두려는 이유는,
제가 인간관계에 '쿨'하려는 이유는, 제가 상처받기 싫어서라는 걸.
제 자신이 주체로써 끈적끈적하고 비효율적인 관계를 상대에게 보일까봐 두렵다는 걸.
사실, 제가 인간관계에 끈적끈적하며 비효율적인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던 건,
바로 그 사람이 저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란 것을요. 어린 시절, 그런 행동을 통해서도 사랑받지 못했던
무의식적 기억이 그 사람에게 투사되어 그 사람이 안타깝고 어리석고 답답해 보였었던 것이라는 걸요.
이 문장이 와닿았으니, 이제 저는 이 문장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나봅니다.
나 또한 인간관계에서 끈적끈적하고 비효율적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에게 관대해진 시야로,
타인을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을. 영화 허(HER)에서 AI와의 관계가 끝나고 상처받은 주인공이
결국 마음을 쉬는 곳은, 이혼한 전 부인의 옆인 것처럼. 결국 마음을 누일 곳은 내 옆에 있는
끈적끈적하고 비효율적인 이 관계, 내가 옆에 기대어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이 곳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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