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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일상

이동을 앞두고

 
 한 부서에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의무적으로 전보를 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나에게도 전보 시기가 왔다. 벌써 몇 번이나 경험한 전보이지만, 나는 이 시기가 되면 늘 고통받았었다.

 그 어떤 인연도 중요하지 않다고, 붙잡지 않고 오로지 일만 했던 나는, 전보 철이면 떨이상품처럼 남는 곳에 꽂혔다(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근무부서 안에서도 떨이상품 취급이었다. 구르는 돌이 오면 빠져나가는 박힌 돌 같은 존재. 그런 상황들 속에서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스스로를 떨이상품으로 생각을 했기에 한마디도 못했던 것 같다. 이번에도, 역시 떨이상품처럼 떨어져 나갈 전보를 상상하며 아찔해졌다. 

  부서장이랑 앞으로 근무할 곳을 찾는 대화를 하는 동안, 이런 말을 들었다. “너의 일은 평가가 어려워서 어느 부서에 추천해 줄 수가(없다)...” 늘 수고스러운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평가가 어렵다는 말을 듣는 아이러니라니. 이 상황에 쓴웃음을 지으면서 자리를 나왔지만, 참 암담했다. 그리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새로운 알아차림도 있었다. 6개월 전에 같은 말을 들었을 때에는, 좌절감이 컸었다. 그때는 같은 말을 들었을 때에는, 그래, 나는 능력이 없지. 그러니까 부서장이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야. 그걸 돌려서 말씀하신 거야,라는 생각들로 위축되었었다. 

  그런데, 같은 장면을 6개월 만에 돌려보는 비디오 테이프 같은 상황에서, 내가 능력이 없구나,에서 이 상황이 안타깝구나,라는 마음으로의 전환을 본다. 시야의 전환을 본다. 이다지도 마음이 다르다니. 신기하다. 

  사회에서의 상호작용은 가족 상호작용의 확장판이라고 한다. 나는 1월부터 본격적으로 가족을 다루는 마음 작업을 했었고, 마음속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를 많이 진전시켰었다. 6개월 전과 지금 비슷한 흐름을 겪으면서 느낀 것은, 내가 많이 단단해졌다는 느낌이다. 

그 단단함이란, 그에 기반한 선택이 달라졌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선택은 같고, 나의 직관은 그때와 같다. 하지만 바닥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다. 예전에는 하염없는 낭떠러지 위에 얇은 그물 위를 걷는 것 같은 조마조마함이었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쉽게 들어올려지고 쉽게 가라앉았다. 
 
 그런데 지금은, 나의 바닥이 단단해졌음을 안다. 선택은 같지만, 그 밑에 낭떠러지 같은 느낌이 덜하다. 불안한 느낌은 있지만, 이전처럼 극도의 날선 불안은 없다. 낭떠러지가 아닌, 안전망이 쳐져 있음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만약 원하는 부서에 가든, 힘든 부서에 가든, 그것이 나의 일임을, 소명임을 알고 하겠다,라는 의지가 든다. 실제 발령이 뜨면 또 마음이 싱숭생숭 하겠지만, 이만큼 성장한 마음을 확인한 마음 것만으로도, 그저 좋다. 조금 더 어른이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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