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일상

그 코코넛에 계속 손 넣고 있을거야?

라이프코치 소란 2024. 8. 31. 23:02

“우리는, 당신이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몇 초 후, 그 문장이 이해가 되고 나니 울음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왜..”라는 끝맺지도 못한 질문에 선생님이 말했다.

“당신은 이 트레이닝을 게임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한 발은 이 트레이닝에 담그고, 다른 발은 빼고 있다고요. 나는 당신이 이 트레이닝을 원하는지조차 잘 모르겠어요.”

순간, 나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사실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한때, 이 가족 심리 수업을 강렬하게 참여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배우고 싶었고. 배운 걸로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열망이 강렬했었다.

하지만,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남편의 반대가 컸고(매달 주말 중 이틀을 풀로 참여해야 했었다), 남편도 일요일에 지방으로 출장을 가는 상황, 친정에 문제가 생겨 트레이닝에 참여를 못하는 경우, 나조차도 아이를 남편아닌 제3자의 손에 맡기는 것에 대한 죄책감들이 계속 나를 몰아넣었다.

혼란 속에서, 그 어떤 확신도 없이. 나는 삶과 배움 속에서 계속 선택을 해야 했다. 결국 배움으로써 돌아가야 할 곳이 삶이고 가족이었기에, 나는 잘 하고 있다고, 희미한 죄책감 속에서 선택을 했었고,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었다.

선생님은, 남편의 동의없이 이곳에 오는 것은 가족 수업이 지향하는 바가 아니라고 이야기하셨다. 그래서 나를 계속 지켜보았었고, 이번에도 이틀 수업 중 남편과의 갈등 속에 하루만 오게 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서게 되신 것 같았다.

하지만, 50여명의 학생들 앞에서 들은 그 말은 엄청난 수치심을 준 것과 동시에, 내가 나에게 걸어 놓은 해묵은 마법의 주문인 “넌 버려졌어. 버려질 만하니까 버려진거지.”라는 스펠을 발동시켰다.

그날의 수업 마지막에,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그간 감사했습니다. 남편의 동의를 얻어 다시 돌아오겠습니다.”라는 말 뿐이었다.

그들은 선택받고, 나는 버려졌다는 그 마음 사이에서 황망해하며 수업을 마쳤다. 돌아올 길은 요원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차에, 트레이닝 멤버인 K가 잠깐 카페에서 이야기 좀 하고 가자고 나를 이끌었다.

오미자티를 시켜놓고 마주앉아서 , 그녀도, 내가 정말 이 수업에 참여를 원하는 것인지 물었다. 나는 확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오늘은 그런 상황에서 거절까지 통보받은 상황이었다. ‘버림받았잖아. 나도 버릴거야.’라는 해묵은 오기가 있었다.

그녀는 선생님의 거절 뒤에 숨겨진 선생님의 사랑을 보라고 말했다. 왜 거절만 보고 사랑은 보지 않냐고 말했다. 나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오래된 저주는 쉽게 깰 수 있는게 아니었다. 나는 그 앞에서 주저하고만 있었다.

그날 밤, 어떤 심리학 책에서 원숭이 이야기가 나왔다. 원주민이 원숭이를 잡는 법에 빗대어서 사람 마음을 이야기한다. 코코넛 구멍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넣어놓고 기다리면 원숭이가 그 음식을 집는다. 그러면 원주민은 원숭이를 잡는다. 단순했다. 원숭이는 손을 펴고 재빨리 도망가기만 해도 사는데 그 음식을 놓지 못해 원주민한테 잡힌다는 것이다. 나의 마음과 같았다. 나는 버려졌어,라는 스펠을 놓지 못해 수많은 기회를 놓쳤다. 왜?

그 불행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 삶이 익숙한 삶이기 때문이다. 혼란한 행복보다 통제가능한 불행이 낫다는 어리석은 생각 때문이다.

삶이 질문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 코코넛에 계속 손 넣고 있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