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책임을 지는

새로운 부서에 적응해 나가는 것도 2주가 지났다.
최악의 1주일이 지나간 뒤로, 나는 안정되고 있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도 많이 내려놓고 사랑으로 돌보고 있고, 아이를 급작스럽지만 선뜻 맡아주신 시부모님에게도 부담감 대신 감사함을 더 느끼게 되었고, 남편도 출장에서 돌아왔다. 그 사이 칼퇴도 한번 했다.
새 부서에서 총무 업무를 맡게 된 이 새로운 도전이 내가 견딜 수 있을 만한 도전을 하늘이 준 것이라면 내가 정말 그럴 때가 되었나,라는 여유로운 생각도 잠깐 해 본다.
남한테 싫은 소리 한번을 못해서 뒤로 미루며 끙끙 앓기만 하던 내가, 이상적인 사람과 비교하며 늘 모자르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며 정의되지도 않는 좋은 사람이 되려 애썼던 내가 지금은,
누군가한테 빚을 독촉하듯 업무를 독촉해야 하고, 그래서 좋은 사람은 커녕 누군가에 입에 오르내리지만 않아도 잘했다고 스스로를 평가해야 하는 지금이, 참 신기하다.
이제 조금 느껴지는 건, 이제 나는 누군가에게 빚을 독촉하는, 누군가에게 부하를 주는 업무라는 이 자리의 무게를 어느정도 받아들였다는 것. 그래서 최대한 부하가 안되는 방법으로 따뜻하게 독촉(?)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라는 다음 스텝을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과
전 담당자, 혹은 다른 부서의 총무 등등 누군가와 비교를 당한 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이제 나는 이 업무를 처음 해봤고, 그래서 실수는 있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이런 비틀거림은 당연하다는 지지를 (비록 100%는 아니지만)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내 토대가 단단히 차올랐음을,
이 도전의 흐름 속에서 새로이 확인한다.
한때는 늘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관리자는 되지 않을 거야. 나는 일머리도 없고, 아랫사람이 생기면 대할 줄도 모르고, 싫은 소리도 하기 싫어. 난 그냥 하급자로 남아있을래. 라고 동료들과 후배들에게 이야기했던 소리가, 어린아이의 투정이었음을 알겠다.
그냥 사랑받고 싶은 어린아이의 자리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는 투정.
하지만, 나는 이제 한 개인으로써도 어린아이로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라는 도전을 받고 있기에 어쩌면 회사에서의 흐름이 내 개인의 흐름과 다르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책임을 지는 어른.
어른, 책임을 지는.
그 삶으로 걸어가고 있다.